[100+] Mi-hee Yoon

현재 하시는 일을 알려주세요.

희곡 쓰는 윤미희입니다. 제가 바라보는 세상을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일을 합니다. 누군가는 부조리극을 쓰는 작가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간단히 정의되고 싶진 않네요.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건지 알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야기를 다루고, 남들이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나 소외되고 하찮은 것, 잊혀진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예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을 복수로 전공했어요. 꽤 오래도록 확신이 없었는데 아마 누군가 나를 알아봐주길 기다렸던 것 같아요. 학부 때 김춘수 시인에 대한 서평을 제출했을 때 들었던 작은 칭찬이 마치 ‘내 이름을 불러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읽고 쓰는 버릇을 길렀습니다. 특히 희곡은 무조건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또, 제가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신 주변 분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대학 때 김사인 시인, 장정일 작가 등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아 열정적으로 다작을 했던 기억이 나요. 방학 때 우편으로 글을 보내서 첨삭을 받기도 했고요.

요새 관심이 가는 주제나 테마가 있나요?

‘책임’에 대한 문제요. 사회적 이슈나 사건 사고들이 발생했을 때, 어떤 식으로 벌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과 그것을 책임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신문기사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면 결국 ‘책임’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희생을 하고, 또 누군가는 회피를 하는 와중에 작가로서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하는 중입니다.

작품 창작 과정에서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요?

관객이나 대중을 위한 작품을 쓸 때도 있지만, 스스로가 만족할 만큼 아주 재미있는, 썩 잘 쓴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스스로 작품에 요구하는 이상이 굉장히 높은 편인데, 어쩌면 영원히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잘썼다, 라고 털어버리는 작품이 여간해선 없는 편이에요. ‘좋은 작품’을 쓰면 쓸수록 매번 기준이 바뀌고 높아지네요. 다만 공모전이나 수상을 목적으로 할 때보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에만 집중했을 때,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어요.

영향받은 아티스트나 작품이 있나요?

이십대에는 베케트, 이오네스코, 아라발, 콜테스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에 천착했어요. 부조리극 경향의 희곡을 많이 읽었죠. 그러다보니 한쪽에 편중되는 것이 아닌가, ‘윤미희 다운 것’을 발견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어요. 요새는 장르 구분 없이 그리스 비극부터 데이비드 그레이그나 닉 페인 같은 미국 현대 희곡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다양하게 읽으려 노력 중이에요. 고전부터 현대까지 섭렵하는 것을 발판으로, 나 다운 것을 찾고 싶어요.

연극의 매력을 알려주세요.

처음 소극장에서 공연을 봤을 때, ‘발화’된다는 것이 굉장한 충격으로 와닿았어요. 특히 대사가 배우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행위에 매력을 느꼈어요. 독백이나 사회적 메세지 모두를 포함해서 무대 위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라는 거요. 작가로서는 내가 쓴 한 줄의 텍스트가 조명이나 음악, 다양한 연출로 표현되는 방식이 중독될 정도로 재미있어요. 또,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연극이라는 예술이 가진 확장성이 관객에게 하나의 세계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 또한 하나의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관객으로서 연극을 볼 때, 어떤 점을 중시하시는지?

워낙 많은 연극을 접하다 보니, 날이 갈수록 호불호나 취향이 명확해지는데요. 요새는 장면 하나하나에도 신경쓴 티가 나는 작품이 좋아 보여요. 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 공연이라 할까요. 인물들의 갈등, 연출, 텍스트의 첨예함이 보이는 작품들요. 스스로 고민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는 절실함 같은 게 보일 때 잘 만든 공연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의 작업 중에서 인상깊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아무래도 첫 공연이 가장 인상이 남는 것 같아요. 일본에서 첫 작품을 올렸는데, 내 희곡이 일본어로 번역되서, 일본인들 앞에서 공연이 된다는 게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어요. 당시에는 이제 막 작가로서 첫 발을 딛은 작품이었고 비록 일회성으로 끝나긴 했지만, 힘든 작가 지망생 시절에 쓴 희곡이라 그런지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도 글을 쓸 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가 언젠가 내 글을 읽고 위로받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해요. 저도 그렇듯이 누군가 나의 글을 통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어요.

코로나 시대의 예술에 대하여

다행히도 작년 1, 2월에는 각각 공연을 했고, 여름에는 전시를 한 번 맡았는데, 전부 예정된 작품이어서 계획이 무산된 것은 없었어요. 그외엔 작품에만 집중하자! 라는 마음으로 글만 써왔네요. 코로나를 체감하게 된 건, 재난을 대하는 국가와 사람들의 태도 그리고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부터였는데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처럼 누군가가 어디서 무얼 했는지 속속들이 알게 되고 통제되어가는 사회를 지켜보면서, 이것을 어떻게 창작으로 이끌어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코로나 판데믹 사태는 아티스트로서의 저를 또다른 사유로 이끄는 것 같기도 해요.

코로나 시대에서의 작품 창작 방식 또는 계획이 있다면?

다른 작가들처럼 카페나 다른 공간에서 작업하는 걸 즐겨하는 편은 아니에요. 서울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왔는데, 연희문학창작촌에도 있었고, 대학로에도 있었는데, 주로 ‘나만의 방’에서 글을 씁니다. 작년부터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줄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니 이틈을 타서 글을 엄청 써두려고요. (웃음) 코로나 때문에 작가로서 책임감을 느껴요. 이런 상황일수록 더 관객분들이 보러가고 싶을만한 공연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요. 모두가 힘들고 절실한 만큼 감각하고 사유하는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 믿습니다.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되돌아 본다면?

이 질문 이런 거 같아, ‘미희에게’. 영상편지 써야할 것 같은데요. (웃음) 극작가가 되기까지 나에 대한 믿음 하나로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감이 없었던 시절이 많았거든요. 자기 검열도 심했고요. 과연 내가 잘하고 있나,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시간을 낭비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 편의 희곡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공을 들이고 노력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게 되었기에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예정입니다.

꿈이나 목표가 있으세요?

작가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을 다해 좋은 작품을 쓰는 일이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진심을 다한 글은 관객들이 반드시 알아 줄거라고요. 오래오래 ‘윤미희다운’ 글을 쓰고 싶어요.

인터뷰. 편집장 김희진


윤미희 프로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 재학중, 2020 공연예술창작산실 연극/창작뮤지컬 대본공모 당선, 201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연극 극작 분야 연구생 당선 외 다수 작품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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